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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고양이는 왜 이슬람 세계에서 환영받았을까

by caspher 2024. 7. 28.

Q : 튀르키예(터키) 지하철 바닥에서 식빵 굽는 고양이를 유툽에서 봤다.  눈 감은 표정이 태평했다. 정작 놀라운 건  승객들이었다. 고양이에게 신경쓰지 않거나 웃으며 바라봤다.  모로코의 파란 마을로 잘 알려진 '셰프샤우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골목에 고양이들이 자기 집처럼 편한 모습으로 사람들 곁에 있었다.  두 장소엔 공통점이 있다. 고양이가 등장하고 이슬람 문화권이다. 중세 때 고양이는 유럽에서 박해를 당했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는 환영받았다. 같은 시기, 두 문화권은 고양이에게 정반대 태도를 취했다. 이슬람 세계는 왜 고양이를 환대했을까.

세프샤우엔-거리-고양이와-사람
세프샤우엔 골목에서 사람과 고양이들 AI로 생성한 가상 이미지

 

이슬람 세계의 동물관

  이슬람 경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 땅 위에 다니는 동물이나 두 날개로 나는 새도 너희와 같은 공동체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같은 공동체'로 언급해 놓았다.  이 말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동물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인간의 우월성을 부각해서, 동물을 지배하고 이용하고 심지어 학대해도 상관없다고 여겼던 당시 대부분의 인식과 현대에도 남아있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과 비교해볼 때 놀랄 만큼 깨어있는  동물관이다. 

  고양이를 직접 언급한 대목은 없다.  하지만 종교관에 동물에 대한 존중과 자비가 깔려 있다보니, 생활 속에서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 학대를 금기시했고, 그들을 배려했다. 가령, 전투와 교통수단으로 중요한 말의 건강과 안위를 중요시했다.  '사막의 배'로 불리던 낙타에게 과도한 짐을 싣지 않도록 하고, 새를 보호하는 특별한 정원이 있었다.  식량 공급원인 양과 염소를 도살할 때에도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사냥과 가축 보호를 담당한 개도 목마르지 않도록 신경썼다. 이는 동물 복지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고양이를 애호하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는데, 그의 고양이 뮈에자가 옷자락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의 옷소매를 잘라냈다고 한다.  그리고 뮈에자가 그의 옷에 새끼를 낳으려고 다가오자 그것을 허락했으며, 고양이가 옷 위에 쏟아놓은 태반을 먹는 것을 보고 불순함을 남기지 않으려는구나 싶어 그냥 두었다고 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고양이를 죽이는 사람은 곡식으로 벌금을 내는 등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개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어도 고양이는 아무런 제한 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고양이는 순수한 동물이었다. 고양이는 쥐를 퇴치했고, 기도하는 데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녀석이 몸을 열심히 닦는 습관은 정화하는 의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신앙의 일부이다'라는 말이 널리 퍼졌으며, 튀르키에에서는 이런 말도 생겼다.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사람은 신앙심이 깊다.' 

  12세기 다마스커스(이슬람 도시) 시의 연대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10세기에 바그다드의 신비주의자였던 시블리는 사망한 후 한 제자의 꿈에 나타났다. 제자는 그에게 신이 어떻게 받아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기를, 신께서 죄를 용서해 준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셨을 때 여러 가지 대답을 했으나 신은 이를 모두 부인하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고 한다.
 "너는 언젠가 바그다드의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을 기억하느냐? 너는 추위에 시달려 쇠약해진 채 혹독한 서리와 비를 피하려고 성벽 틈새에 숨어 있는 고양이를 털옷 속에 넣어 주었다. 네가 그때 고양이에게 행한 자비심 때문에 나는 너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중세의 많은 이슬람 도시에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물과 음식을 제공하는 공공 장소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 수도권 몇몇 지역에서 공원이나 정해진 장소에 급식소를 설치하고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후자는 고양이 개체수를 관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전자는 고양이를 돌보는 것이 사회적 책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는 일이 흔했고, 가족의 일원으로 대했다. 고양이가 받는 사회적 대우가 이처럼 남달랐다. 

  중세 때 유럽에서는  '고양이 오르간'이라는 것까지 고안해서 고양이를 고문하고 괴롭히는 일을 거리낌 없이 즐거워했던 경우도 분명히 있었다. 한 우리 안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가두고, 우리 밖으로는 고양이들의 꼬리가 보이는 장치였다. 사람들은 꼬리에 불을 붙이거나, 집게로 잡아당기고 망치로 때렸다. 고양이들이 괴로워하며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즐겼다. 어차피 그들에게 고양이는 악마의 대리인, 마녀의 하수인인 사악한 존재였으므로, 양심의 가책 따위 느낄 리 만무했다. 같은 시기에 두 문화권에서 벌어진, 같은 동물에 대한 극과 극의 태도, 행동의 차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각자 음미해 볼 만한 일이다.

  고양이가 인간 세계에 발을 들이기로 결정했을 때,  인간 세계가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현상이 난무하는 난장판임을 알았다면,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발끝을 돌리지 않았을까 싶다. 고양이들이 펼치는 귀여움의 향연이 유툽  조회수 일익을 담당하는 한편으로, 길고양이 학대와 집고양이 유기가 심심찮게 벌어지는 지금의 현실은,  현재도 중세 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내가 좋으니까, 내가 싫으니까, 내게 이로움이 생기니까, 내게 피해가 생기니까'란  전제에는 내가 있다. 종교를 떠나, 모든 동물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같은 공동체라는 말을 곱씹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