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양이

고양이는 색맹일까?

by caspher 2024. 8. 3.

Q : 눈이 오면 강아지가 유난히 꼬리치고 반기던 기억이 있다. 색맹이라 검은색, 흰색만 볼 수 있어서 그렇다고 들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파란색과 노란색을 인식하고, 빨강과 녹색은 회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고양이는 어떨까?  장난감에 진심인 고양이에게 낚싯대에 매달린 쥐를 색깔별로 흔들었을 때 반응은 똑같이 열렬했다. 다채로운 색깔은 집사들의 구매욕을 높이기 위한 용도일 뿐?  하지만 고양이도 색맹은 아니다. 구분하는 색이 제한적일 뿐. 시력이 뜻밖에 사람보다 정밀하지 않다는데?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이유는? 이렇게 눈과 관련된 궁금증을 풀어보자.

눈이-큰-고양이-사진-직접-촬영
호기심에 눈을 동그랗게 뜬 고양이

 

야행성인 먹이 사냥꾼에게 이상적인 눈

  고양이는 모든 육식동물 가운데 몸의 크기에 비해 눈이 가장 큰 동물이다.  평균 직경은 약 21mm. 훨씬 몸집이 큰 인간의 경우  약 24mm이다.  고양이 눈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과 가장 비슷한 형태이다. 특이한 점은 눈알이 두개골에서 상당히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좌우 280도까지 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상당히 넓다. 양쪽 눈으로 동시에 포착하는 정면의 시야가 넓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비교적 넓은 시야를 공간적으로 파악해 낸다. 자신이 노리는 먹잇감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끈기 있는 먹이 사냥꾼에게는 이상적인 특성이다.

  뜻밖에 고양이의 시력은 사람보다 예리하지 못하다.  단지 2~6m 범위의 시야에서만 사람의 눈과 비교될 뿐이다. 그 거리를 벗어나면 고양이는 주위 세계를 불투명하게 파악한다. 하지만 자신의 집사만큼은 약 100m 떨어진 거리에서도 알아본다.  얼굴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특유의 동작과 신체의 윤곽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먼 거리에 취약한 대신 가까이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는 데 뛰어나다. 동체 시력이 얼마나 탁월하냐면 뱀이 공격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민첩함을 보여준다. 


  고양이에게 원거리 시력은 별 의미가 없다. 먼 거리에 있는 정적인 물체는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사냥에서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쥐와 같은 먹이에 빠르게 반응하고 추적하다 보니 근거리 동체시력이 향상되었다. 

  고양이는 색을 구분하는 능력도 매우 약하다. 사람의 눈보다 추상체(색을 감지하는 시각 세포)가 적고 붉은빛에 반응하는 추상체도 없다. 녹색과 청색을 구분할 수 있지만, 붉은색과 노란색은 서로 농도가 다른 회색으로만 감지한다. 하지만 이는 고양이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밤에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거의 회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특히 석양이 지나면 붉은빛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밤사냥꾼들에게는 붉은색을  알아보는 시력이 불필요하다. 게다가 고양이의 주요 먹잇감들은  수백만 년 전부터 주로 회색털이나 회갈색 털을 몸에 덮고 움직이는 동물들이었으므로 색에 대한 고양이의 관심은 늘 한정되어 있었다. 

  밤에도 빛나는 고양이 눈은 고양이만의 특성이 아니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은 물론이고 개나 늑대, 여우, 너구리 같은 포유류와 일부 조류 및 어류에서도 발견된다.  '타페텀 루시덤(Tapetum Lucidum)'이라고 부르는   '반사판' 때문이다. 망막 뒤에서 반사를 담당하는 특수한 시각층이다. 이 반사판은 빛을 모아 어두운 곳에서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타페텀 루시덤 덕분에 사람보다 약 6배 더 어두운 환경에서도 볼 수 있다. 완전히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고양이도 별 수 없지만. 

밤에-빛나는-고양이-눈

  이 타페텀 루시덤 때문에 고양이 눈은 밤에 빛을 비추면 반사하여 빛나게 된다. 옆에 사진처럼 플래시를 켜고 사진을 찍으면 고양이 눈이 푸르스름하게 번쩍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플래시를 끄면 빛을 반사할 수 없어 눈이 빛나지 않는다.  고대인들은 어둠 속에서도 야광처럼 번뜩이는 고양이 눈에 매혹당하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이는 고양이의 야간 사냥에 조력하는 신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아마 자신의 눈이 번쩍이는지 어쩐지도 잘 모를 것이다. 

  고양이의 눈은 빛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밝은 빛을 받으면 동공이 들어오는 빛을 줄인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아주 가느다랗게 변하는 것이다. 반대로 밤이 되면 동공은 원처럼 둥글어진다. 밤에 고양이가 더 귀엽게 보이는 이유가 까맣고 둥글게 커진 동공 덕분일 수 있다. 고양이 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낮보다는 밤에, 햇빛보다는 그늘 속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고양이의 눈은 환경에 따라 '조리개(동공) 장치를 자동적으로 변환'하면서 빠르게 순응한다. 이처럼 상황에 맞게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눈의 망막에 산발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간상체(빛을 감지하는 시각세포로 밝기와 명암에 민감)이다.  고양이 눈에는 사람 눈에 있는 것보다 두 배나 많은 간상체가 있지만, 추상체의 수는 훨씬 적다. 따라서 고양이의 시력은 정밀하기보다 강하다. 

  고양이의 눈은 내면의 기분도 반영한다. 동공은 빛과 무관하게 흥분하면 확대된다. 특히 먹이를 줄 때 자주 일어난다. 미리 기뻐하면서 흥분하기 때문에 동공이 확대된다. 한편 방어 상태에 있을 때에도 그렇기 때문에  기분이 좋을 때만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우월한 상태에 있다거나 마음이 느긋할 때는 동공이 좁아진다. 눈꺼풀 상태 역시 고양이가 처한 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크게 열린 눈꺼풀은 긴장하고 주의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반대로, 눈을 반쯤 감고 있으면 안정되고 긴장이 풀려 있다는 뜻이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 상태는 만사 오케이다.

  고양이의 눈은 이렇게 밤사냥에 필요한 생존 전략이 진화한 결과이다. 하지만 작은 코와 입에 비해 두드러진 큰 눈으로 인간의 미적 감각을 사로잡았다. 먹이사슬 최상위에 위치한 인간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훨씬 유리한 생존법인지 모른다. 두더지처럼 땅속 생활하느라 시각이 필요 없어 눈이 퇴화한 동물은 인간에게 보이는 족족 얻어맞으니 -심지어 두더지 때리는 오락기계도 있다- 역시 인간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외칠지 모르겠다.